누가복음 24:13-27(이스라엘을 속량할 자)(최재연목사) | 최재연 | 2024-0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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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24:13-27절 개역개정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13-27(이스라엘을 속량할 자)(최재연목사)
빨리 배우기 위해 공부를 하고 체계를 잡아가는 것이지 좋은 선생 아래 있으면 세월과 함께 어느 덧 배워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 잘만나면 유전자도 이어 받지만 부모가 하는 일을 통해 배워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라의 대계인 교육이나 교회의 미래인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학습하며 배우기도 하지만 함께 있으며 영향을 받아 배우기도 합니다. 나의 설교 속 내용은 성경 속 과거 이야기와 현실 속 미래 이야기로 꽉 차 있습니다. 물론 어느 때는 누군가의 사례나 예화도 들어가지만 대체적으로 한 손에서는 성경, 한 손에는 뉴스를 들고 설교합니다. "파묘"라는 영화가 한 창이었는 데, 넷플릭스에 풀려 보게 되었습니다. 온갖 귀신들이 다 나옵니다. 물론 교회 장로님도 나옵니다. 결국은 대한민국 사람이 일본신을 이긴다는 내용으로 결론이 납니다. 물론 이것은 내피셜입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도 특별히 배우지 않았는 데 경험하고 들었던 이야기를 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쯤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말으로 두 명의 제자들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동행하는 데 알아차리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주고 받습니까?" 그러자 글로바의 말에서 복음은 시작됩니다. 글로바와 다른 제자들은 서로 그냥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는 데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복음이요, 그것이 전도요, 그것이 교육이요, 그것이 선교인 것입니다. 1. 나사렛 예수의 일이다.(19)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십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편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글로바는 예수님께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사렛은 극히 평범한 예수님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라는 이름과 함께 붙으니 거룩하고 귀중한 이름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호나 별명이나 별칭을 부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표현해 주는 가장 적합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무엇인가 표현하고 싶은 가장 좋은 별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사렛이 아주 평범한 작은 고을이었듯이 한국이란 나라도 불과 50년전만해도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K팝, K드라마를 통해 문화의 성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검암이라는 지역도 그냥 검은 바위가 있는 곳이라는 이름이며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50년 후 우리를 통해, 우리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통해 거룩한 성지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2.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이시다.(21) 글로바는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을 속량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죄없는 사람이 없고 죄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아마도 죄없다고 하는 순간, 그것이 죄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 모든 나라는 속죄가 필요합니다.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누가 그 값을 치뤄줄 수 있습니까? 죄없는 하나님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하고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메시야입니다. 그들은 그것만을 바랬습니다. 정치적인 지도자나 경제적인 지도자가 이상의 지도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예수님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유일하게 제자들만이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속량할 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무덤에 여인들이 찾아갔지만 예수님은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제자들도 조차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부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한 후에 영광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모든 것이 쉽게 얻어진 것이지, 고난도 쉽게 겪고 영광도 쉽게 얻었겠지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그냥 부자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남은 쉽게 하고 쉽게 얻고 쉽게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쉬운 일은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지혜롭게 행동하였기에 얻어 지금의 그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고난이 없이 얻어지는 영광은 없습니다. 영광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도 피흘림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희생한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세대는 우리의 희생을 먹고 자랍니다. 봄에 뿌린 수고의 씨앗이 가을에 열매가 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나사렛 예수가 우리 나라의 죄를 속량하고 우리 나라의 고난을 잘 이기도록,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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